많은 사람이 임종이 가까워 오면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가족과 친지 등 주변에 유언을 남기고 떠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일곱 마디 말씀을 남기셨는데 바로 가상칠언(架上七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구원의 길을 완성하시려는 시점에서 남긴 가상칠언에는 어떠한 영적인 뜻이 담겨 있을까요? 먼저 1언과 2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언,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자가 달리는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순전히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한 로마 군병과 백성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멸시하며 흉악한 죄인 취급을 했습니다.
오직 선만 행하시고 흠 없으신 예수님을 향해 관원들이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라고 희롱하였지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운명하시는 순간까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능이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간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고자 온갖 고난과 수치를 묵묵히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아들로서 자신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린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본인들의 하는 행동이 얼마나 큰 죄인지도 몰랐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가장 먼저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저희’란 단순히 당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희롱한 사람들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있는 온 인류를 일컫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이 참된 진리이신 주님을 모르고 엄청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둠에 속한 사람들을 주관하여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을 핍박하게 합니다. 이럴 때에 마땅히 행할 바가 무엇인지 예수님께서는 가상칠언 첫 번째 말씀을 통해 깨우쳐 주셨습니다. 바로 사랑의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용서하고 간절히 기도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2언,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골고다 언덕에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좌우편에 두 행악자도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이때 한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으나 다른 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십니다.
이는 회개한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있을 것을 약속해 주신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누구든지 회개할 때 죄를 용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렸을 때 좌우편에 있던 강도들에 대한 기록이 다르게 나옵니다.
마태복음 27장 44절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했고, 마가복음 15장 32절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하여 둘 다 예수님을 욕했다 하지요. 반면 누가복음 23장에는 ‘한편 강도가 다른 편 강도를 꾸짖고 회개하여 구원받았다’고 나옵니다.
이처럼 강도에 대한 복음서의 기록이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성경의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 상황을 현장감 있게 유추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당시 상황을 보면 수많은 무리가 십자가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많은 군중이 모여 예수님을 향해 악한 말들을 하고 있었지요. 이런 소란스러운 상황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에 있던 강도 중에 한편 강도가 예수님을 욕하였습니다. 그 강도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그 소리를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편 강도도 예수님 쪽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 것이 마치 예수님을 욕하는 것 같았지요. 그는 예수님을 욕한 강도를 책망한 것인데, 맞은편에서 볼 때는 중앙에 계신 예수님을 향해 욕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처럼 다른 편 강도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상황 속에 멀리서 그 장면을 본 사람들 중에는 두 강도가 예수님을 욕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그때 상황을 정확히 알았던 사람들은 한편 강도는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며 회개하여 구원받았다고 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후세 사람들이 그 당시 상황을 분별할 수 있도록 성경 기자들을 통해 기록의 차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 말씀하지 않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아름답습니다.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 성으로 나뉘며, 각 처소마다 행복과 영광이 다릅니다. 특히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 보좌가 있는 가장 영화로운 처소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반면 낙원은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로 부끄러운 구원받은 사람이 들어갑니다. 이들은 단지 주님을 영접했을 뿐 죄를 싸워 버리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 뿐,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고자 죄를 버린 것도, 누구를 전도한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상급이 없는 낙원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다고 해서 예수님이 강도와 함께 낙원에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낙원뿐 아니라 모든 천국의 주인이시기에 이렇게 말씀한 것입니다.
또한 ‘오늘’이란, 예수님께서 운명하신 날 혹은 특정한 날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한 강도가 구원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니 그가 어느 곳에 있든지 함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운명하신 뒤 곧바로 낙원으로 가셨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에는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마 12:40) 했습니다. 그리고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 3:19) 하셨는데 여기서 ‘옥’이란 감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윗음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운명하신 뒤 윗음부에 가서 그곳에 있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윗음부에 가셔야 했을까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기 전에는 구원받을 영혼들이 아브라함 품에 안겼다고 나옵니다(눅 16:22). 이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윗음부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 구약 시대나 신약 시대라 해도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선한 양심을 좇아 살다가 양심 심판에 의해 구원받을 사람도 있기에(롬 2:14∼15) 운명하신 후 윗음부에 가서 복음을 전하신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행 4:12).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아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더욱 기도와 전도에 힘쓰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가상칠언 1언에서 ‘저희’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2. 구원받은 강도는 왜 가장 낮은 처소인 낙원을 허락받았을까요?
3. 예수님은 운명하신 뒤 어디로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을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220~2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윗음부’란?
윗음부는 정확히 천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천국에 속한 곳으로, 구약 시대 구원받은 영혼들이 대기하던 장소이다. 정확히 말해 주님이 부활하시기 전까지 구원받은 영혼이 대기하던 곳이다.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대기 장소가 천국 낙원의 가장자리로 바뀌었다.
신약 시대 윗음부는 구원받은 영혼이 낙원의 대기 장소로 들어가기 전 3일간 영의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거치는 곳이며, 임신 6개월 후 태중에서 유산 또는 낙태된 영혼 중에 구원받은 영혼이 영원히 거하는 처소이기도 하다.
202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