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간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상칠언에는 매우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 의미를 밝히 깨달아야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가상칠언 중 3언~5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제3언,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 보라 네 어머니라”
동정녀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면 마치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뵈온 듯하여 머리카락 하나라도 상할까 늘 조심하며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 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장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받고 계시니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지요. 그 애타는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예수님은 십자가 곁에 서 있는 마리아를 부르셨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자신을 낳아 준 마리아에게 “어머니”라 하지 않고 “여자여”라고 부르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 어머니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린 것이요, 마리아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어머니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며(출 3:14) 누군가 하나님을 낳았거나 만든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기에(빌 2:6)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이 마리아를 ‘어머니’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더구나 마리아는 유전적으로도 예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지요. 사람은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는데,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동정녀 마리아를 예수님의 어머니로 섬기며 우상처럼 경배한다면 십계명 중 2계명에도 어긋납니다(출 20:4). 하나님께서는 어떤 피조물의 형상도 만들지 말고 섬기거나 경배하지 말라고 금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19장 26∼27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마리아 옆에 있는 제자 요한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를 위로하시고자 요한을 아들처럼 여기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 사랑했던 예수님이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고 있으니 마리아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실지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한에게는 “네 어머니라” 하여 동정녀 마리아를 어머니같이 섬기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믿음 안에서 모든 사람이 한 형제 자매이며 가족이라는 영적인 소속감을 일깨워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 해도 주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히 함께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 하신 대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참된 가족이요,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할 수 있습니다.
제4언,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온 인류에게 전하는 가상칠언에는 매우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소리가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성경에 정확히 기록될 수 있도록 예수님은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을 원망하며 부르짖은 소리라고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온갖 멸시 천대를 참으며 모든 고통을 견딘 분이 곧 운명할 즈음에 하나님을 원망하실 리가 없지요.
그러면 예수님은 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던 것일까요?
첫째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알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무런 흠도 점도 없는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처참하게 십자가에 달린 것임을 알리는 절규입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이라 부르셨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며, 죄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진 죄인으로서 하나님께 철저히 버림받은 상태였기에 감히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하나님”이라 하셨지요.
둘째는, 예수님이 인생들을 위해 죽어 주건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여전히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들에게 다시 한번 경고하며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피조물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철저히 외면하셨는지를 잘 아셨지만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며 무지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회개하여 구원받도록 간절히 외치셨던 것입니다.
제5언, “내가 목마르다”
예수님은 뜨거운 햇볕 아래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흘려서 탈진 상태였기 때문에 타는 듯한 갈증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배고픔은 참아도 목마름은 견디기 어렵다고 하는데 그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이 단순히 그러한 갈증을 참지 못해서 “목마르다”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육적으로 타는 듯한 갈증보다 더 견디기 힘든 영적 목마름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 자녀들을 향해 “내가 피를 흘림으로 목이 마르니 내 피 값을 찾아 목마름을 해소해 달라”는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해 달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영적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목마르다”고 하시자 신 포도주를 머금은 해융(스펀지처럼 물을 빨아들이는 물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님의 입에 댔습니다(요 19:29). 이는 시편 69편 21절에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라는 예언대로 이루어진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맛보셨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신 포도주를 드심으로 우리에게는 새 포도주를 마시게 하셨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새 포도주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으로 인해 완성된 신약의 사랑의 법을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죄에 따른 형벌을 받아야 하고, 죄 사함을 받으려면 매번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속죄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모든 저주를 속량해 주셨습니다. 곧 우리를 위해 신 포도주를 맛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사랑을 마음에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 그 믿음으로 인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신 포도주를 맛보시고 우리에게 새 포도주를 마시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주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목마르다 호소하고 계십니다. 그 목마름은 피를 흘림으로써 생겨났습니다.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고 죽으셔야 했던 이유는 바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십자가 보혈로 구원받은 우리들은 마땅히 주님의 피 값을 찾아 드려야 합니다. 그 피 값을 찾아 주님의 목마름을 해소해 드리는 것은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은 자신을 낳아 준 동정녀 마리아에게 “어머니”라 하지 않고 “여자여”라고 부르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예수님께서 마리아에게 “아들이니이다”라고 하셨는데 이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3. 예수님은 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던 것일까요?
4.“내가 목마르다”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20~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도 요한’은 어떤 인물일까?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 형 야고보와 함께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으나 주님을 만나 사랑의 사도로 변화되었다.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예수님으로부터 동정녀 마리아를 잘 섬기라는 부탁을 받았다.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와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설 명절 감사 예배 순서와 예문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서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5년,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 예배 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 봉독 ---------------- 고린도후서 5:18~19 ---------------- 인도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지요. 이유인즉슨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시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서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지요. 또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에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것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지요.
야고보서 3장 5~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지요.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말 한마디도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한 만큼 받지 못한다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더구나 남편은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에게 져주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출 20:6).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 악들을 행한다면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냈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 다해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출 20:4~5).
사람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기도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25-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