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0과 열 재앙(2) - 지팡이가 뱀이 되다

읽을말씀 : 출 7:10-13
외울말씀 : 이수진 목사

1. 환난, 재앙, 연단, 시험의 차이와 의미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사람들은 재앙이라는 말을 씁니다. 또 신앙인들에게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시험이나 환난, 연단이라는 말을 자주 쓰지요. 로마서 5장 3-4절에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진리대로 사느냐, 살지 않느냐, 얼마큼 믿음이 있느냐에 따라 재앙이라 할 수도 있고 연단 혹은 시험, 환난이라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수 없으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환난’이라고 한다면, 더 나아가 믿음마저도 저버리고 비진리 가운데 행할 때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비록 온전히 말씀 가운데 살지 못한다 해도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마음에 있는 죄의 속성을 버리기까지 싸워나가는 과정을 ‘연단’이라고 하지요.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나가는 과정 중에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연단입니다. ‘시험’은 믿음이 얼마나 자랐는지 영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작업과 같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연단과 시험이 오는 것이요, 하나님을 노엽게 함으로 오는 것이 환난과 재앙입니다. 그중에서도 재앙이란 짐짓 죄를 지으므로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만큼 재앙이 임하지요. 재앙이 임했는데도 여전히 돌이키지 않고 악을 행하면 애굽의 열 재앙처럼 더 큰 재앙이 임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재앙은 신속히 물러가게 됩니다.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재앙을 당한다 해도 사람에 따라 마음과 행함이 다른 것을 봅니다. 바람직한 모습은, 재앙을 당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면 재앙이 거두어지고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그런데 다른 모습은 “나는 열심히 교회에 출석하면서 기도도 하고 헌금도 하는데 왜 이런 재앙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 앞에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지 않으니 더 큰 재앙이 임하게 되지요.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는 만큼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단단하여 아무리 복음을 전하여도 마음 문을 열지 않지요.
   세상 사람만 이에 속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 하는 사람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않고 그저 교회만 왔다 갔다 할 뿐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도 이에 해당합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서 머리로 알기는 하지만 행함이 없으니 죽은 믿음에 불과하지요. 시간이 지나다가 재앙이라도 만나면 자신은 잘못이 없다며 원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재앙이 임했다면 반드시 합당치 못한 것이 있음을 깨닫고, 돌이킴으로 신속히 재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 지팡이가 뱀이 된 이적
   
   출애굽기 5장 1절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라고 모세는 애굽 왕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지만 바로는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출애굽기 5장 2절에 “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 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도 보내지 아니하리라” 하지요.
   도리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을러서 딴생각을 품는다는 억지 이유를 만들어 더 심한 고역으로 학대합니다. 평소 짚을 주어 벽돌을 만들게 하였으나 이후로는 짚도 주지 않은 채 벽돌을 전과 동일하게 만들라고 명합니다. 짚을 주어도 노동량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짚까지 주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의 성품이 얼마나 완악한지 알 수 있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시고 이적을 베풀어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십니다. 바로가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출애굽기 7장 10절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졌더니 뱀이 된지라” 모세를 통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지팡이를 들어 뱀을 만드심으로 바로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뱀을 만드신 이유
   뱀은 영적으로 사단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지팡이로 뱀을 만드신 것일까요? 모세가 서 있는 곳은 애굽 땅 바로의 왕궁이요, 이는 세상, 원수 마귀 사단에 속한 것이므로 이를 상징하기 위해 뱀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합하지 못한 사람들은 항상 사단의 역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지요.
   바로 왕은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실 수 없으므로 사단을 의미하는 뱀을 등장시켜 깨우침을 주십니다. 사단의 역사가 따를 것을 예고하는 것이지요. 이후에 피의 재앙이나 개구리의 재앙, 이의 재앙도 모두 사단의 역사로 인함입니다.
   여기서 지팡이가 뱀이 된 사건을 우리의 삶에 대입하면 자신과 가까운 곳에서 문제가 오는데, 너무 크지 않으므로 느낄 듯 말 듯 우연으로 돌릴 수 있는 일들이 생기는 단계입니다. 아직 재앙의 피해가 있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께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경고입니다. 이 사건과, 이어지는 이적을 베풀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모세가 행한 몇몇 이적을 애굽 술객들도 나타내지요. 모세를 대신하여 아론이 애굽 왕 앞에서 지팡이를 던지자, 뱀이 되었습니다. 이에 왕은 애굽의 박사와 박수들을 불렀는데 이들도 지팡이로 뱀을 만들었습니다.
   
   2) 술객들이 뱀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모세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셔서 그렇게 할 수가 있었는데, 술객들은 어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다음에 설명할 피의 재앙에도 모세가 지팡이로 하수를 치니 물이 피로 변했는데 애굽 술객들도 그렇게 할 수가 있었습니다. 또 모세가 개구리를 불러들이니 술객들도 그렇게 하였지요. 그들은 특별히 뽑힌 사람들로서 하나의 벼슬이었으며 그 직업은 조상 대대로 물려졌기에 재질을 타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전문적으로 연구했기 때문에 그 능력이 대단했고 더구나 그들은 영적으로 자신을 개발하여 악한 영들과 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는 것은 그 당시로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도 세계적인 마술사들의 공연을 보면 중국의 만리장성을 통과하기도합니다.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이 사라지게 하는 것도 있었지요. 인도의 요가를 오래 수련한 사람 중에는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서 잠을 자거나 자기 몸보다 심히 작은 통속에 몸을 넣는 묘기를 보이기도 합니다. 단순한 눈속임뿐만 아니라 육체와 정신의 수련을 통해 터득한 기법으로 놀라우리만큼 신기한 묘기를 보이지요.
   고대는 오늘날 마술하는 사람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대단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악한 영들과 접할 수 있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무당 중에 귀신의 영을 접해서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작두 위에서 뛰고 춤을 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금도 상하지 않지요. 바로 술객들도 악의 영들에 접해서 갖가지 능력을 발휘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수련한 것과 악한 영의 도움을 받은 술객들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 능력의 한계까지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악한 영의 권세 안에서만 가능하지요.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 전국의 물이 다 피가 되게 했지만, 술객들은 왕궁의 많은 하수 중 하나를 택해서 피로 변하게 했을 뿐입니다. 술객들이 능력이 있다면 모세가 저주한 것을 해결하거나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렇게는 할 수 없었지요. 또한 모세는 티끌로 이를 만들었는데 술객들은 하지 못하고 그 이후에 나타내는 재앙은 따라 하거나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3. 신앙 안에서 우연은 없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져 뱀을 만들자, 바로는 ‘하나님이 정말 있는가 보다.’ 하다가 애굽의 술객들도 뱀을 만드는 것을 보니 다시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술객들의 뱀이 아론의 지팡이로 만든 뱀에게 먹혔지만, 우연의 일치로 돌려버리고 마음을 더 강퍅하게 했지요.
   신앙 안에서는 우연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초신자들이 이 제단에 나타난 권능의 역사로 치료받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사단은 마음에 의심을 심어주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 해결 받은 것이 ‘우연이었나? 다른 방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았을까?’ 하며 우연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은혜를 받고서도 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세상으로 향하면 전에 체험했던 일이나, 굳게 믿었던 믿음이 의심되거나 우연의 일치로 돌리게 됩니다.
   축복의 역사도 그렇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도 하셨지만 내 힘, 내 지식, 내 경험도 많이 작용했다고 생각하지요. 온전히 하나님께 감사하며 영광 돌리지 않을 때, 믿음이 조금 남아 있다 할지라도 확고한 믿음이 아니기에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지요.
   이렇게 되면 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외면하실 수밖에 없고, 옛날에 해결 받았던 문제가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치료받은 질병이 재발하거나 전보다 더 심한 병이 들 수도 있지요. 사업이 번창하는가 싶더니 더 심하게 망해 버리기도 하지요. 하나님께 응답받은 것을 우연의 일치로 돌림으로 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차츰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니 문제가 다시 생기고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후서 6장 16절에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악한 영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주관자는 원수 마귀요,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것이 더 쉽고, 유익처럼 보인다 해도 우리는 결코 어둠을 좇을 수 없습니다. 당장 편리를 좇아 악을 행하고 어둠의 길을 가면 결국 재앙이요, 사망이기 때문이지요. 지혜로운 성도들은 참된 복의 길, 빛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고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시므로 크고 놀라운 축복을 항상 받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202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