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Q&A
Q
추도예배 및 조문에 관한 설명
추도예배나 조문의 경우 신앙인으로써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1. 장례식 조문 시 영정 사진 앞에서 기도와 헌화 조문은 떠나간 고인에게 예를 다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조문을 갔을 때, 그 나라의 법과 풍습에 결례되거나 벗어나지 않도록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가령,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헌화하는 것은 일종의 조문에 대한 예의요, 고인의 가족들에 대한 예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상과 귀신 앞에 머리를 숙이며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적 분위기와 법도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며, 고인의 가족에 대한 배려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 앞에 가한 것입니다. 더불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더라고 그 기도는 죽은 사람 앞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이기에 죄가 되지 않습니다. 남겨진 가족들을 위해, 장례 절차가 주 안에서 형통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또 혹여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면 이 기회를 통해 전도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이지요. 성도님들 중에, 다른 교회에서 나온 간증을 듣고, 거기에 어느 종교의 머리가 지옥에서 자신에게 헌화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다고 질문을 하셨는데, 여기서 그 머리가 헌화하는 사람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 것은 헌화하는 그 행위 때문이 아니라, 헌화하는 사람들이 자기 종교의 머리를 우상으로 여기는 마음에서 헌화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 종교의 머리는 이미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상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고, 따라서 자기 종교의 머리를 우상시하는 마음에서 헌화를 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2. 만약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은 사람, 믿지 않는 가정이라면 조문 시 어떻게 기도하는가? (당회장님 '85년 7월7일 우상과 제물' 설교 中) 이방인들이 볼 때 이상히 보거나, 핍박할 수 있으므로 소리 내어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 속 중심으로 묵상 기도를 하면 되는데, 이때 무릎을 꿇고 해도 되고, 서서해도 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설령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해도 이는 죽은 사람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고, 또 이러한 행위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법도에 맞게 예를 갖추어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고인의 가족들에 대한 배려와 예의이기도 하구요. 이때 기도할 내용은, 먼저 원수마귀 물리치는 기도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원수마귀 다 물리쳐 주시옵소서.', 다음은 가정복음화와 영혼구원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믿지 않는 영혼들이라도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하시어 구원에 이르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처럼 믿음을 가지고 중심을 다해 아버지께 기도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3. 추도예배 최근 어느 교회 목사님의 설교 중 '추도 예배도 우상 숭배'임을 지적. 일부 목회자들도 추도예배를 '죽은 사람과 그의 혼령을 대상으로 기리고 애도하는 예배'라 규정하고 명백한 우상숭배의 행위임을 주장하고 있는 것같습니다. 제사는 그 형식과 절차에 있어서,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이나 조상을 섬긴다는 명목아래 절을 합니다. 이는 그 마음을 내어주고 빼앗기는 것이므로 귀신이나 우상 앞에 절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추도예배는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므로, 불가하다 할 수 없다 하셨습니다. 앞서 말한 조문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추도예배 또한, 고인의 가족들의 위로와 위안을 삼고자 예배를 드리는 것이기에 불가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추도예배의 목적이 남은 가족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하도록 은혜를 나누기 위한 것이며, 혹 믿지 않는 가족이 있다해도 그들 역시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에 이르도록 하려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만약 믿지 않는 가정이나, 믿지 않고 죽은 고인을 위해 추도예배를 드릴 때는 그 예배의 의미를 알려주고 함께 예배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적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죽은 사람이든, 그렇지 않고 죽은 사람이든 '죽은 사람 앞에 상을 차리는 것'은 귀신 앞에 하는 것임을 알려주고 예배는 이와 다르다는 것을 미리 설명해 주어야 하지요. 이처럼 진정한 의미를 알고 예배를 드리므로, 믿지 않는 자들이 그 사랑의 마음을 느끼고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는 가족들이 함께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면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고 죽은 사람이든,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이든 그 가정에서 추도예배를 드리지 않는다 하여도 이를 책망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오히려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하늘의 소망이 있으므로 추도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상관이 없고, 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4. 예배 시 함께 상을 차리는 것에 대해. 상을 차려놓고 함께 추도예배를 드리는 것은 주의를 해야 합니다. 예배는 예배 상에 성경을 올려놓으며, 예배의 격식에 맞추어 드려야 합니다. 예배 후에 상을 차려 식사를 하도록 하면 되지요. 즉, 예배는 따로 드리고 다 마치고 난 후 상을 차리되 제사의 형식대로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정겹게 식사하며 서로 신앙의 격려를 하며 우애를 다지는 자리로 마련하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마음이 중요한데, 그렇다고 행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마음은 상관없이 행위적인 것만 가지고 옳다 그르다, 그것도 자기 기준에 말해서는 안됩니다. 영의세계란 내가 아는 한계를 넘어 얼마든지 무한하다는 사실입니다. |
Q
구원의 확신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교회에 다닌 지 수년이 되었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에서의 삶을 소망하며 기쁘고 즐겁게 살아가는 성도들을 보면 너무 부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가 "당신은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확신하느냐"고 물으면 하나님께서 저를 어떻게 보실지 모르기 때문에 우물쭈물하고 맙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원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며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셨습니다(창 1:26-28).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도 영을 주셔서 생령이 되게 하시고 영으로 서로 교통하며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범하므로 영이 죽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롬 6:23) 죄인이 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난, 죽음이 있는 이 땅에서 살다가 죽은 후에는 지옥에서 영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 지극히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죄의 삯으로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구원의 문을 통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길을 따라 구원의 문을 들어가면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모든 죄를 사함받고 잃었던 모든 축복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영이신 하나님과 다시 교통을 이룰 수 있게 되며 이 땅에서 만사형통의 축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문을 통하여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온 사람은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지 아닌지, 죽은 후에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을지 없을지 이미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별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성령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이 없는 성도가 있고, 어떤 사람은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있지 않으면서도 구원을 받을 줄로 믿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 확신 가운데 신앙생활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4:6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했고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테두리를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16을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믿어야 할까요? 로마서 10:9-10을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왜 예수가 구세주가 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고 마음에 믿어 입으로 시인해야 하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요 1:12)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9:2을 보면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시는데(행 2:38) 마음에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인치시고 보증하시기 때문입니다(고후 1:22).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확신하며 신앙생활해야 합니다. 로마서 8:16에도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것이요,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것입니다(요 3:5). 2.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기쁨이 넘쳐나고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고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게 됩니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과 함께 마음에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이제까지 육체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던 육신의 법과 새롭게 성령의 소욕을 좇아 살고자하는 성령의 법이 싸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때의 심정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고 표현했습니다(롬 7:24). 그러나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기도에 힘쓰게 되면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해 주시므로(롬 8:26)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자가 되어야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것이요, 주님의 보혈의 피가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시므로(요일 1:6-7) 성결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7:21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요, 야고보서 2:17-22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갈 때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며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빛 가운데 행하려고 힘쓰고 있다면 행함있는 믿음을 소유한 것이니 구원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하나님의 말씀대로 완전히 행하지 못하고 있다해도 낙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 가운데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기도에 힘써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 구원에 이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Q
영적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어떠한 예배인가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와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교회에 다닐려고 애쓰고 있기에 어떻게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배(禮拜)의 사전적 의미는 '신(神)에게 경의(敬意)를 나타내며 경배(敬拜)하는 의식'입니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 경배를 받을 만한 참된 신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셔서 인간에게 주신 분이며 스스로 계신 분으로서 완전하실 뿐아니라 전지전능하셔서 못할 일이 없으신 분이시고 성경의 저자가 되어서 우주만물과 세계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로 타락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며 크신 사랑을 베푸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하나님께 존경과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의식이어야 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이어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예배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나 신약시대인 오늘이나 동일하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적예배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4:3-5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양의 첫새끼와 기름으로 드린 피의 제사는 열납하셨으나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드린 제사와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물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형태로 드려진 예배나 자기 방식대로 드리는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어 주시며 축복해 주십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온 백성과 함께 여호와 앞에 나아가 일천번의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는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지식 뿐아니라 그가 구하지도 않은 부와 재물과 존영까지 주심으로 솔로몬 이전이나 이후에 그와 같음이 없게 하셨습니다(왕상 3:3-15, 대하 1:1-13) 예배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표현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주일예배에 한번 참석하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배드리는 삶의 연장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믿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과 분리된 예배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자세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을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예배하는 것이요,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는 예배시간에 하나님 앞에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예배를 드리기 위해 주의해야 할 몇가지 사항을 알려 드립니다. 1) 예배시간에 지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적주권을 인정하는 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와 법도를 따라서 행할 때에 마음에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예배시간에 지각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는 것이 됩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약속된 시간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 시간 안에 도착하여 기도하면서 마음을 정돈하고 예배드릴 준비를 갖춰야 하는 것입니다. 가령 대통령과 접견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연히 미리 가서 준비하고 기다릴 것입니다. 하물며 일국의 대통령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에 늦는다거나 허겁지겁 달려와서야 되겠습니까. 2) 예배시간에는 말씀을 듣기에 전념해야 됩니다. 거룩한 단 위에 말씀을 증거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양떼들을 천성으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따라서 설교 시간에 멍하니 다른 곳을 쳐다본다든가 옆사람과 소곤소곤 한다든가 가정 일터 사업터에 대한 염려 근심으로 가득차 있다면 하나님 앞에 무례히 행하는 것이 됩니다. 대통령이 연설하는 자리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바르게 앉아서 경청하겠습니까. 예배시간에 졸거나 잠을 자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3) 술과 담배를 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초신자이기 때문에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죄 있다고 탓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배에 참석하는 시간만큼은 술 담배를 하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통령 앞에 나갈 때도 술을 마시고 얼굴이 벌개서 나갈 수 없는데 더군다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나오면서 술, 담배를 하고 나올 수는 없는 것입니다. 4)예배 분위기를 흐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어린아이가 울거나 마구 떠들어 돌아다니도록 내버려 둔다면 다른 많은 성도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마음을 모두어 예배를 드릴 수 없도록 만드는 격이 되니 하나님께 무례를 범하는 것이 됩니다. 예배드릴 때에 껌을 씹는다거나 예배 도중에 일어나 나간다면 이것도 하나님 앞에서나 예배드리는 형제들 앞에서 무례한 행동이 됩니다. 사람 앞에서도 윗분이라면 대화중에 임의로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는데 더더구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사람이 이런 행동을 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설령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예배에 참여했다면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모자를 쓰고 있거나 티셔츠나 운동복 차림으로, 또는 슬리퍼를 신고 예배드리러 오는 경우 모두 하나님을 민망케 하며 예의에서 벗어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는 될 수 있는 한 정장을 하기 바랍니다. 수요예배 같은 경우 일터에서 곧장 교회로 오는 경우도 있고, 모자를 쓸 수밖에 없는 어떤 사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판단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겸비함 속에서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할 뿐아니라 기쁨과 기도와 감사와 예물과 행함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소원을 응답해 주시며 갖가지 축복으로 갚아주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담으로 천군천사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주시기 때문에 한 주간동안 형통한 축복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Q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기도 잘하는 사람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나는 언제쯤 저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막상 기도하려고 하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과 같아서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데 기도는 왜 해야 하는 것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며 응답의 열쇠이므로 하나님의 자녀에게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건으로서 신앙생활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시며 친히 가르치신 기도내용을 보면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6:9-13). 또한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것을 보면 어떠한 자세로, 어떠한 중심으로 기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누가복음 22:39-44). 성경을 통해 기도는 왜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설명하겠습니다. 1. 왜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살펴보면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을 고백하고(마 6:9-10) 하나님의 허락하심을 간구하며(마 6:11-13)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기서 기도의 대상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이며,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준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간구할 것은 일용할 양식 뿐만 아니라 죄사함을 위하여, 시험에 들지 않으며 악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영적인 호흡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라도 호흡하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기도로써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으며 죄를 범하게 되고 시험에 들게 되며 결국 악에 빠지게 되므로 영생의 길을 온전히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대화를 하므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하며 이 땅에 사는 동안 만사형통의 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복된 삶을 살고 영생복락도 소유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축복된 삶을 살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며 예수님을 통하여 기도의 본을 보이시고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무슨 일에나 자세를 바르게 할 때 마음도 모두어지는 것처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기도할 때 먼저 올바른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올바른 기도생활이야말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며 이러한 기도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위대한 체험의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 먼저는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가정이나 학교, 사회 등 크고작은 집단의 일원으로서 법을 좇아 규칙적인 생활을 할 때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되고 이로써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가정에서 아침이나 저녁 식사시간을 정해 놓고 지키는 것은 매우 작고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이러한 질서를 가족 모두가 중요시하고 잘 지켜만 준다면 보다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겠지요. 이와 같이 신앙 안에서도 영적인 충만함을 공급받는 기도시간을 정해 놓고 습관을 좇아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고 신속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고(눅 22:39),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으며(사도행전 3:1), 다니엘 선지자도 하루 세번씩(단 6:10) 습관을 좇아 기도했다고 말씀합니다. 둘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나 어른들 앞에서도 자세를 바르게 하지 않고 몸가짐을 아무렇게나 하는 것은 무례한 일입니다. 하물며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면 더더욱 자세를 바르게 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기도의 향을 올리려면 마땅히 경건한 자세를 취해야 하며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고 기도에 전념하기도 쉽습니다. 다리가 연약하여 도저히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할 수 있는 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해 나가시면 하나님께서는 다리의 연약함도 강하게 해주십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며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간구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사자를 통하여 힘을 주시며 응답받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해야 하므로(고전 10: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욕으로 구하는 것이요,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잘못 구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아(약 4:2-3)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하게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넷째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예레미야 29: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믿음의 선진들은 한결같이 부르짖어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기도란 그 내용이 중요한 것은 물론이려니와 장소와 시간 그리고 올바른 자세를 갖추어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른 모습과 자세를 갖출 때 마음도 모두어지는 것이며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의 향을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로 습관을 좇아 시간을 정해놓고 새벽기도나 철야기도를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신속하게 응답으로 축복하십니다. |
Q
권능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표증은 무엇이며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일까요?
성경을 보면 믿음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한 기록이 수없이 나옵니다. 그러면 권능이란 무엇이고, 권능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표증은 무엇이며, 어떠한 사람에게 권능이 임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 즉시 하인의 질병을 치료해 주셨으며,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믿음을 갖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권능받은 주의 종이나 일꾼들을 통해 수많은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과 기이한 일들을 나타내시며 무수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권능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사람들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일까요? 1. 권능이란 무엇인가?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믿음의 힘입니다. 또한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있고 영광스러운 힘이요,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성결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따라서 모든 악과 비진리를 버리고 성결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면 영적인 권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능력, 권세, 권능은 어떻게 다를까요? 비유를 들면, 가정에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아들이 있다 해도 가장으로서의 권세는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질서가 잡힌 가정이라면 아들이 벌어온 돈을 아버지가 요구할 수 있고, 아들의 입장에서는 순종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권세가 있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도 있다면 권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은 어떠한 사람에게 임하는가?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께 권능을 받은 사람들은 마음에 악이 없는 사람 즉 성결된 사람이었으며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얼마든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계명들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는 권능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온전한 권능을 행하려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단계를 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차원의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하지만 악을 버리고 성결된 사람이 되면 불 같은 기도를 쌓는 만큼 권능이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아직 성결에 이르지 못하여 스스로 권능을 행할 만한 차원에는 이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보장하는 사람의 기도를 믿음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권능의 역사가 따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제자들을 안수하여 보내었을 때 표적이 따랐던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마 10:1). 3.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 예수님께서는 죽어 나흘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 베드로나 바울 사도도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갖가지 역사를 행하였습니다. 이렇게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놀라운 일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서만이 나타날 수 있으며 오늘날도 권능 받은 하나님의 종들과 일꾼들을 통하여 증거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권능은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시 62:11), 마치 하나님께 속한 고유상표와 같아서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누군가 권능을 행하고 있으며 그것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에 속한 것이라면 그는 분명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권능은 영혼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지만, 거짓으로 꾸며낸 권능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개인의 유익을 취하거나 스스로 영광을 받고자 하므로 열매를 보아 분별할 수 있습니다. 4. 권능을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표증들 1) 표적(表蹟)이 따릅니다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하나님의 능력이 눈에 보이게 나타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는 것은 물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굽었던 허리가 펴지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역사 등이 이에 속하지요. 마태복음 4:23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여 병과 약한 것이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약한 것이란, 가벼운 질병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나 부모나 자신의 실수로 신체의 어떤 기관이 마비되거나 퇴화되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 행함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병 고치는 은사 즉 신유의 은사를 받으면 성령의 불의 역사로 아픈 부위나 질병의 균을 태워 병을 낫게 할 수는 있으나, 그런 병들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므로 표적에 해당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2) 희한한 능(能)과 기이한 일이 따릅니다 희한한 능의 예로는 사도행전 19:11-12에 기록된 사건을 들 수 있는데,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고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의 경우, 그림자만 스쳐도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행 5:15-16). 기이한 일에 대한 예로는 모세가 애굽에서 행했던 열 재앙과 예수님께서 중풍으로 꼼짝도 못하던 사람을 치료하신 것(눅 5:17-26)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것 이 외에도 희한하고 기이한 일은 얼마든지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3) 기사(奇事)가 따릅니다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에 해당하는 일들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름을 움직인다든가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이에 속하지요. 성경상에서 예를 들면, 사무엘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 주신 일이 있었고(삼상 12:18), 또한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구하자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간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20:11). 또한 엘리야 선지자는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셨다고 했습니다(약 5:17-18). 이처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의 간절한 믿음의 간구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성결을 이루며 불같이 기도하여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권능의 차원에 들어오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