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Q&A

Q
세례는 왜 받아야 하며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활절이나 추수감사절, 성탄절과 같은 절기가 되면 교회에서는 세례식을 거행하는데 세례는 왜 받는 것이며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중대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을 보면 그 내용이 나오는데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게 되는데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됨을 증거하는 예전이 바로 세례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주님께서 친히 명하신 거룩한 예식으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세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를 할례로 나타내었습니다. 남자의 성기에 할례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람 사이에 언약의 표를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육체에 행해지는 표면적인 할례보다는 마음에 행해지는 내면적인 할례를 중요시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신약시대에 와서는 할례를 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내면적인 할례를 받게 하시고 물로 세례를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공적으로 증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구약시대의 할례가 발전된 의식으로서 내적으로 받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외적으로 증거하는 상징적인 표가 됩니다. 마태복음 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물로 세례를 받으신 장면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이 물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행위적으로 나타내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내적으로는 성령을 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외적으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표가 없으므로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이지요.
   둘째로, 성령받은 자체를 기념하고 기리기 위함입니다.
   세례는 성령받은 자체 즉 이제 성령받아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고 기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성령을 받아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음을 기념하는 예적인 표가 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날마다 씻김을 받기 위함입니다.
   물로 더러운 것을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더러운 죄의 모습들을 깨끗이 씻어 버려서 선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세례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세례는 죄사함을 받았다는 외적인 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는데 이러한 증거로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2.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이유
   베드로전서 3장 21절을 보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물이 생명을 주고 죄를 씻어 주는 구원의 표가 될 수는 없습니다.
   물은 이 세상의 모든 생물들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물이 공급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더러움으로 가득 찰 것이요, 모든 생물들은 생명을 잃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물은 더러운 것을 씻어 주어 깨끗케 하는 작용이 있을 뿐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것으로서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 곧 영생수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3장 5절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물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마음에 양식을 삼고 지켜 행해야 마음 안에 있는 더러운 죄가 버려지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요, 또한 성령을 받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베풀 때에는 물로 베푸는 것이요,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죄사함을 받고 생명을 얻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외적으로 증거하는 상징적인 표가 되는 것입니다.
   
   3. 세례를 받는 시기
   물세례에 있어 성령이 오시기 이전의 물세례와 오늘날의 물세례는 다릅니다. 성령이 아직 오시지 않은 상황에서 주었던 물세례는 회개와 구원의 표를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10일 있다가 성령이 오셨을 때에 그 이전에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8장 16-17절을 보면 성령이 오신 뒤에도 성령을 알지 못하고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있어 사도들이 가서 안수함으로 성령이 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성령을 받지 않고도 물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으나 오늘날은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성령을 받고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다음에 물세례를 받는 것이 옳다 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물세례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성령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47, 48절을 보면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했습니다. 즉 성령받은 사람은 누구나 물로 세례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에 등록을 하고 6개월간 학습을 받은 후, 또다시 6개월이 지난 다음에 세례를 받도록 각 교단의 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정기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진리를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인도한 후, 세례를 받게 하여 주님 오실 때까지 믿음을 변치 아니하고 충성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마음에 성령받은 확신과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이요, 세례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확신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Q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십계명이 기록된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는데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친구가 있는데 얼마나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지 주일 아침이면 교회에 가서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주일 대예배 뿐 아니라 저녁예배도 드리고 기도모임, 친교모임도 가지며 봉사도 하는데 너무나 좋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는 일주일 중에서 가장 편안히 육체를 쉴 수 있는 휴일에 왜 하루 종일 교회에 가 있느냐고 말렸는데 지금은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 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닌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왕이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그대로 살고 싶습니다.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것인지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그 의미와 방법은 무엇이며 또 그에 따른 약속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우치시고 마음에 귀한 양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안식일의 의미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엿새 동안에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복(福)주시되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날에 친히 안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2:1-3).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네 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출 20:8-10).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편안하게 쉬는 날입니다. 이는 단지 육체적으로 편안히 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참된 안식 곧 영적인 안식을 의미합니다.
   육체를 위해 먹고 마시며 깊은 수면이나 오락을 취하는 것은 순간적인 즐거움에 불과하므로 사람에게 참된 안식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지식과 명예, 부귀영화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취했다 하더라도 염려, 근심, 걱정, 질병의 고통 속에서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다면 이것 역시 참된 안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요?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와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으므로(롬 5:12)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요 14:6)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자유함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자 정하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된 안식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2.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오늘날로 보면 토요일이었습니다. 달력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일요일이 첫째 날이고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인 일곱째 날이지요.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고 지금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여전히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에 와서는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함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화목제물로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갈 3:13) 생명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인 일요일 새벽 미명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마 28:1)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지요(고전15:20). 이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생명과 참된 안식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으며(마 12:8) 이 때부터 교회에서는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고전 16:2) 주님의 날이라는 의미로서 주일(主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에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기쁨과 행복과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를 구원하여 참생명과 안식을 주게 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토요일이었던 안식일이 일요일 즉 주일로 바뀌게 될 것을 이미 말씀해 놓고 계십니다. 레위기 23:10-12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우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했지요.
   여기서 안식일 이튿날은 바로 그들이 안식일로 지키던 토요일의 다음날인 일요일을 말합니다. 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요. 이처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안식일 이튿날에 여호와께 드리라 했으니 이 예언대로 주님께서는 일요일에 부활하셨고, 이 날이 진정한 기쁨과 감사로써 아버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안식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3.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과 하나님의 축복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엿새동안은 힘써 일하고 주일에는 세상일을 멈추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쉼은 물론 영혼의 안식을 누림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말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 안에서 쉼을 얻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서는 우리 영혼에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 새로 시작되는 한 주간 동안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드린 후 믿음의 형제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교제할 때 우리의 믿음을 더욱 돈독케 해주십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를 다하는 성도들에게 사고와 질병, 시험환난이 없도록 막아주시며 한 주간 동안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혹 실수가 있더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주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 욕심을 추구하지 않고 사고파는 매매행위나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세상일을 삼가면서(느 13:15-22) 하나님의 뜻대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영적 축복 뿐 아니라 범사에 축복을 주십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을 영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4.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반면에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악(惡)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을 범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할 때에는 예배를 드린 후 다시 가게문을 열거나 사업터, 일터의 일을 연장하여도 하나님께서 죄있다 하시지 않지만, 만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분명히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 유익을 좇아간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따라서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진리를 알지 못한 사람이라면 배우고 성장함에 따라 온전히 주일을 지켜가야 하고 또 믿음이 있는 자는 마땅히 가르침 받은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시며 사랑으로 병든 자를 고치셨던 것같이(마 10:10-12) 병든 자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의사나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군인, 경찰 등 특수한 직업이나 부득이한 공무관계로 주일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주일예배를 드린 후에 근무한다 해도 주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므로 먼저 예배를 드리고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Q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요?
저는 찬양을 통해 많은 은혜를 받고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이유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은 과연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습니다.


찬양의 사전적 의미는 '훌륭함을 기리어 드러냄' 입니다. 그러나 찬양의 성경적인 의미는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및 그분의 모든 행사를 시, 노래, 여러 악기들의 연주 및 춤 등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시편 150장 3-5절에는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음악은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으며 생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노래를 많이 부른다고 해도 영혼이 잘 되는 축복이 임한다거나 사업터나 일터에 축복이 임하는 것이 아니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또는 영광을 돌리기 위해 드리는 찬양은 생명이 있기에 우리의 삶에 기쁨을 주고, 영혼이 잘 되게 하므로 갖가지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은 어떠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이유
   우리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이유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1장 36절을 보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했고,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아 참생명을 얻었고 영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구속의 은혜와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해 주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하나님을 찬양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찬송 중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시 22:3). 따라서 곡조 있는 기도인 찬양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
   1) 천국에 소망을 두고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의 찬양
   찬양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회개의 찬양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지 못하여 죄를 지음으로 충만함이 떨어지니 곤고함 속에서 드리는 슬픔의 찬양을 말합니다.
   둘째로는 사명감당을 위한 찬양입니다.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드리는 찬양이지요.
   셋째로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찬양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바로 천국에 소망을 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참생명의 찬양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열심히 증거하다가 옷을 벗기우고 매를 맞고 착고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하늘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받는 고난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송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옥문을 여시고 착고를 풀어 주시며 간수의 가정까지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로 함께하신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드리는 찬양을 기뻐 받으신다는 사실입니다.
   
   2) 마음 중심을 다해 드리는 찬양
   찬양에는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와 살아 역사하는 영혼의 찬양이 있는가 하면, 비록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을 한다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소망을 두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향기로운 찬양을 올릴 때 기뻐 받으십니다. 물론 이러한 마음 중심에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겸비한다면 최상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 중심을 다한 찬양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거룩하고 흠 없는 상태에서의 찬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흠과 티가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며 사랑 자체가 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도 악이 전혀 없는 거룩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이 넘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하며 또한 찬양하는 사람의 외모도 깨끗하고 단정해야 합니다.
   둘째로, 기도로 준비된 찬양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추진하려고 할 때에도 만반의 준비가 선행되어야 하듯이 아름답고 은혜로운 찬양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찬양하는 곡과 가사 등 분야 분야를 정성껏 준비하되 무엇보다도 기도로 준비해야 합니다.
   따라서 마음 중심의 찬양을 부르기 위해서는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고전 14:15). 그래야만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이요, 세상으로부터 오는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벗어 버림으로 마음에 평강이 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성령의 감동함 속에 드리는 찬양입니다.
   찬양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은혜를 입고 감동함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찬양하는 사람이 먼저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야 은혜로운 찬양을 할 수 있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은혜가 될 수 있는 영혼이 담긴 감동의 찬양을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찬양은 우리에게 충만함을 주어 영혼을 살찌우며 모든 것을 아름답게 바꾸어 줍니다. 즉 슬플 때에 충만함과 기쁨을 주고(시 105:2, 3), 상한 마음을 치료받으며(삼상 16:23), 모든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줍니다(벧전 1:3-7).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며(행 16:25, 26), 어떤 상황에서도 수치를 당치 않게 되고(욜 2:26),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는 등 많은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Q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나요?
성경을 읽다보면 간혹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행하셨을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생깁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는데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린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아니하시고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린 아벨의 제사는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짤막하게 축약된 성경 몇 구절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성경은 인류 최초의 기원과 종말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들을 기록하되 자세히 기록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매우 간략하게 기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 25절에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모든 사건을 대할 때에 보다 넓고 깊이 있는 안목으로 대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흠과 티가 없으신 진리 자체이시니 한 치의 오차와 오류도 없이 모든 일을 사랑과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만을 받으셨을까요?
   
   1. 가인과 아벨의 제사방법
   가인과 아벨은 최초의 인간이었던 아담과 하와가 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 낳은 아들입니다.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 아무 부족함이 없이 살다가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사망이 있는 이 세상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과거를 회상하며 그의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게 되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이유는 무엇이고 어떻게 드려야 하는가 등등을 배웠습니다.
   당시의 제사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된 모든 인류의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상태가 아니므로 제사를 드릴 때마다 짐승을 잡아서 그 피로 죄사함을 받는 피의 제사였습니다. 따라서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서 피의 제사를 기뻐하시며 축복하신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형 가인은 농사짓는 일을 하기에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양을 치는 일을 하였으므로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피의 제사를 드린 아벨과 그 제물은 받으셨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은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는 것이지요.
   
   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은 가인의 제사
   레위기 1:2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 소나 양으로 피의 제사를 드리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레위기 23:10-12을 보면 땅의 소산으로 드릴 경우, 첫 소산으로 하나님께 드리되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함께 드리도록 명하셨습니다.
   가인은 아버지 아담을 통해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을 누누이 가르침 받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땅의 소산을 취하여 적당히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자기가 드린 제물이 열납되지 않자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더니 결국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동생을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켜 순종하는 것이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것인데 가인은 회개하며 기도하기는커녕 오히려 분을 내며 살인죄를 범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가인과 같이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아니하시는 형식적이고 거짓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형식적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명심하여 지켜 행하려 하지 않고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가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지식적으로 알아도 행치 아니하고 여전히 세상과 짝하며 산다면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린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믿음으로 피의 제사를 드린 아벨
   히브리서 11:4을 보면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정성껏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생명은 피에 있으며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도 없기 때문에(히 9:22) 하나님께서는 피의 제사를 원하신 것이요, 아벨의 제사를 기뻐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린 영적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기뻐 받으시고(요한복음 4:23-24) 의와 인과 신을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축복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성경 66권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로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예물로써 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 의를 행하였고, 가인이 악하여 분내며 시기 질투하고 미워하며 죽이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기에 가인을 대항치 아니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벨은 형제를 사랑하고 의를 행한 자요, 하나님을 사랑하였기에 하나님께 속한 자요, 하늘나라의 상이 큰 것입니다. 우리도 아벨을 본받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사를 드리며 의를 행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참된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Q
주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구원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까?
마태복음 7장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다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줄 알고 있었는데 이 말씀을 읽으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 주님을 믿는다고 해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인지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장 큰 목적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기 위함입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는 나라이므로 이 세상과는 달리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사망이 없이 영생복락을 누리는 곳입니다.
   이러한 천국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므로 죄가 있으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 16, 17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말씀하셨으며, 또한 요한복음 1장 12절에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에 이를 것을 약속하신 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다 해도 구원받을 수 없는 경우도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이하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주여 주여 부르는 자라 할지라도,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또한 요한일서 1장 6절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해도 이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치 아니하는 것이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2장 15절을 보면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진리를 알면서도 행치 아니하고 오히려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는다 해도 어떠한 경우에 구원받을 수 없는지를 밝히 깨달아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첫째로, 불법을 행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주여'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는다는 고백인데 이러한 고백을 한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빛되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가지만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한다 해도 불법을 행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에도 보면 알곡과 가라지를 비유하여 알곡은 창고에 들이지만 가라지는 불에 살라버리는 것처럼 세상 끝인 심판 때에도 알곡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가라지 곧 믿는다 하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지옥불에 던짐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불법이란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대로 행치 아니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이요,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는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불의한 자란 미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곧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이 외에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범죄하는 것을 말하므로 이것도 불법을 행하는 것이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죄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가 있는가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6-17절을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경우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을 훼방하고 거역하며 모독한 경우
   마태복음 12장 31-32절을 보면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성령훼방이란 마가복음 3장 20-30절에 나와 있듯이 성령의 능력을 사단으로 말미암은 사술(邪術)이라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12장 32절에는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했고, 누가복음 12장 10절에는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고 사람으로 안다는 것이니 사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거역하거나 모욕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를 거역하고 모독하는 것이므로 사함을 받을 수 없고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훼방이나 거역, 모독은 영원히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이며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결코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2) 성령을 받은 후 타락해서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
   히브리서 6장 4-6절을 보면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보인 자들이란 성령을 받은 후 천국과 지옥이 있음도 알고, 진리의 말씀을 들어서 알고 믿으면서도 세상의 유혹을 받아서 교회와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향해 타락되어져 현저히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영이 주어지지 않으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3) 진리를 들어서 알면서도 짐짓 죄를 지어가는 경우
   히브리서 10장 26-27절을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를 들어서 알면서도 짐짓 죄를 지어가는 경우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을 때 나단 선지자가 죄를 지적하자 즉시 회개하고 돌이켰지만,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자가 죄를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 왕은 다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었지만 사울 왕은 버림을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짐짓 죄를 지어나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외면해 버리시기 때문에 성령이 소멸되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정녕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 타락하여 짐짓 죄를 범하게 되면 성령이 소멸되어 회개할 수 없으니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흐리게 되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계시록 3:5).
   그러나 지식으로는 알았지만 마음 중심에서 믿지 않았던 사람일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믿음이 생기게 되면 구원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다가 떠났다 해도 다시 전도를 받아 회개하고 돌이켜서 새롭게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한 번 지었다고 해서 단번에 버리시는 것이 아니요, 몇 차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알려주셔도 돌이키지 않고 계속하여 범죄함으로 양심이 화인을 맞아 구원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불법을 행하여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게 되면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 오직 진리 가운데 행하는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어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